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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News - `4대강 트라우마` 빠져 길잃은 물활용

보령댐은 바닥인데 인근 백제보·세종보는 물충분
4대강 11개보 물활용 방안 '낮잠'…정부 몸사리기

가뭄으로 제한급수가 시작된 8일, 충남 보령시 주민들은 며칠간의 시범 제한급수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가뭄이 심각합니다. 보령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을 아껴씁시다"라며 골목을 누비는 안내방송차량만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해주고 있었다.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민성(45)씨는 "아직은 장사에 지장을 주지않는 상황이지만 비는 오지 않고 보령댐 물은 계속 줄어드니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이날부터 충남 보령·서산·당진·서천·청양·홍성·예산·태안군 등 8개 시·군에 물공급량을 20% 줄이는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8일 현재 저수율 22.4%를 보이고 있는 보령댐은 중앙 부분을 제외하고는 보령호 전체가 바닥을 드러냈다. 송석두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수자원공사 예측에 따르면 비가 오지 않으면 내년 1월에는 보령댐의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것이라 한다"고 말했다.

보령댐을 젖줄로 삼고 있는 충남 서부 8개 시·군은 가뭄으로 목이 타고 있지만 바로 인근의 공주와 부여, 세종시만 하더라도 가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세종보, 백제보 등이 물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령댐이 바닥을 드러낸 것과 달리 보령댐에서 직선거리로 30km 남짓 떨어진 백제보는 이날에도 물이 가득했다.

전국적인 가뭄에도 불구하고 4대강에 설치된 보에는 아직 저수량이 충분하다. 하지만 보에 저장된 물을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 끌어다가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농어촌공사는 2013년부터 상습적인 가뭄문제 해결을 위해 4대강의 물을 저수지나 댐으로 끌어다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에 대해 농식품부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2017년부터 1조원을 투자해 4대강의 11개보의 물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놓았지만 이 방안은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 여당의원실 관계자는 "4대강에 20조원이 투자됐는데 여기에 1조원만 더하면 이 물을 활용해 가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하지만 농식품부는 야당이나 시민단체로 부터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을까봐 몸을 낮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 4대강 트라우마'를 핑계로 4대강 물 활용 방안을 제대로 추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충남 서부지역의 가뭄 문제가 심각해지고 난 후에야 정부는 지난달 24일 보령댐 상류와 백제보를 잇는 관로 건설 사업을 결정했다. 이 사업은 내년 2월까지 백제보보령댐 상류 21㎞에 직경 1.1m짜리 관로를 매설하고 취수장과 가압장 각 1곳을 건설해 하루 11만5000t씩 용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62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11만5000톤은 현재 보령댐 하루 공급 용수의 60%에 해당하는 양이다.

여당의원실 관계자는 "백제보~보령댐 관로 공사는 4대강 물 활용 가능성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야당 등의 반대를 두려워하지 말고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중 물이 가장 풍족해야할 지금 충남 서부 지역은 가뭄으로 제한급수가 실시됐지만 정치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날 열렸던 국토교통부, 농릭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가뭄 대책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농식품부도 "저수지 준설 등 용수 용량을 높이기 위해 9월부터 국비 포함 500억여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한가한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해당 지자체들도 스스로 할수 있는 게 없다며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제한급수에 들어갔지만 충남도와 8개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는 '물 절약' 안내 방송이나 상황이 심각해 질 경우 급수차 운영 등 외에 가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정책적 수단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보령댐~백제보 관로 연결 공사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결정이 내려졌지만 환경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예비타당성 평가 등 중앙 정부의 행정절차 등으로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가뭄은 이미 예고됐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가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정부 차원에서 가뭄에 대한 경고를 내리거나 이를 대비하는 기구가 없다. 가뭄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던 정부는 지난달 말 부랴부랴 국무총리 산하에 '물 관리 협의회'를 신설해 수자원 관련 정책의 통합적 관리를 위한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수량 측정은 국토부, 수질 관리는 환경부, 농업용수는 농식품부, 지방 하천 관리는 행정자치부, 강수량 예측은 기상청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승호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가뭄은 위험이 닥치기 전까지 인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인지한 순간에는 이미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없는 재앙이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의 공급원은 같지만 시민들은 물공급이 중단돼 생활의 불편을 느껴야 가뭄 문제를 깨닫고 농민은 농업용수가 부족해야, 산업분야에서는 산업생산에 차질을 빚어야 비로소 가뭄문제를 인식하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 차원의 중장기 종합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2006년부터 국가정보통합가뭄시스템(NIDIS)을 만들어 지역사회 다양한 기관들과 가뭄 경보,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별 가뭄조기경보시스템을 개발해 미국 전역의 가뭄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국립가뭄경감센터가 5단계로 나뉜 가뭄경보를 발표하고 있다.

정일원 APEC기후센터 기후변화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가뭄에 대한 예방, 예보 시스템이 부실하다 보니 가뭄이 시작되고 나서야 단수 등의 대책을 내놓는다"며 "기후모델을 비롯한 장기예측 자료를 활용해 가뭄 발생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시스템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뭄 관리를 각 부처가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보니 협업이 어렵다"며 "홍수보다 가뭄이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고,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 등으로 가뭄의 발생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가뭄 관리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기철 기자 / 장원주 기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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